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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꿈

VOL.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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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보는 4·3 Timeline

4·3은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미군정기에 발생해 6.25 이후에 이르기까지 무려 7년 7개월에 걸쳐
제주 공동체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분단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극대화된 이념의 대립이 제주에서 폭발해
국가공권력에 대한 희생으로 귀결된 비극적인 일, 4·3의 주요 사건들을 짚어본다.
정리. 편집실 / 사진. 영화 「지슬」 자료제공 제주4·3평화재단

1947.3.1

좌파 진영의 제주민전(민주주의민족전선)이 주최한 제28주년 3·1절 기념식 개최.
군중과의 마찰에서 응원 경찰이 총을 발포해 관덕정과 도립병원에서 주민 6명 사망, 8명 중경상을 입음.

1947.3.10

제주도청을 시작으로 3·1사건에 항의해 민·관 총파업 돌입, 3월 13일까지 제주도 전체 95%에 달하는 166개 기관 및 단체에서 파업에 동참.

1948.2.7

남로당, 남한 단독선거에 반대해 총파업을 일으키는 ‘2·7투쟁’ 전개.

1948.4.3

무장봉기 발발.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350여 명의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새벽 2시를 기해 제주 도내 12개 지서를 공격하고 우익 단체 요인의 집을 습격.

1948.4.28

미군정의 교섭 지시에 따라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평화협상 진행. 72시간 내 전투중지 등에 합의.

1948.5.1

우익 청년당원들이 연미마을 민가에 불을 지른 ‘오라리 방화사건’ 발생. 미군정은 남로당 무장대 등 폭도들의 소행으로 규정, 평화협상 파기.

1948.5.10

5·10 남한 단독선거 실시. 북제주군 갑·을 2개 선거구는 과반수 미달로 선거무효가 됨.

1948.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공포, 정부는 제주 사태 진압을 위해 군 병력을 증파하고 강력한 토벌작전을 실시.

1948.10.17

제주 해안에서 5㎞ 이상 지역에 통행금지 명령. 18일에는 제주 해안이 봉쇄됨.

1948.11.13

토벌대, 애월면 하가리와 소길리 원동마을에 방화하고 주민 50~60여 명을 집단 총살함. 이 날을 기점으로 약 4개월간 무장대와 토벌대가 각각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하고 주민들을 집단총살함.

1948.11.17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 선포, 그해 12월 31일까지 계속됨.

1949.1.17

‘북촌사건’ 발생. 토벌대가 마을 인근에서 기습받은데 대한 보복으로 마을을 불태우고 이튿날까지 주민 400명 가량을 집단총살.

1950.6.25

6·25 전쟁으로 보도연맹 가입자와 요시찰자 그리고 입산자 가족 등이 대거 예비 검속되어 처형당하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되었던 4·3사건 관련자들도 즉결처분됨. 약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

1952.4.1

제주 경찰, 작전지도반의 지도하에 4월 30일까지 30일간 예정으로 ‘제주도 지구 잔비섬멸작전’을 전개.

1953.11.2

제주읍 도평리·노형리 주민, 북제주군과 경찰에 재건 복귀를 진정. 7일에는 1년 여 간 소개생활을 해오던 대정면 산이수동 주민들이 복귀·입주.

1954.9.21

한라산 금족구역 해제. 4·3 발발 이후 7년 7개월만에 사실상 종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