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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꿈

VOL.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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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뼘 더 깊은 제주 이야기>전지적 제주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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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쁨

작가 브렌다 백선우(Brenda Baik)

고희를 훌쩍 넘긴 재미교포 3세인 브렌다 백선우. 그가 제주 애월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명쾌하다.
호기심과 생각의 유연성. 그가 70대에 들어서 제주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너무 늦지 않았나 걱정했다.
그러나 이미 제주에 대한 넘치는 호기심과 유연한 생각을 실천하며 주위의 우려를 딛고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알렸다.
글. 이지윤 / 사진. 정익환

제주도의 여장부, 해녀

‘백선우’라는 이름을 제주에 처음 알린 건 제주 해녀에 대한 책, ‘Moon Tides : Jeju Island Grannies of the Sea, 해녀사진집’ (2011)을 펴내면서부터다. 우리 말로 풀이하자면 ‘물 때, 제주의 바다 할망’이다. 제주 해녀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도 기여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미주 코리아 타임스 등의 언론 매체에서 기자, 편집자로 일하다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그와 해녀의 첫 만남은 1980년대 여행을 하러 친척들과 함께 제주에 놀러 왔을 때였다. 당시 처음 해녀를 접하고 그저 신기하게만 생각했던 그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해녀들을 취재하고 알아가기 위해 제주를 수 차례 오갔다. 고령의 나이에도 사계절 차가운 바닷속에 들어가는 해녀들을 보며 그는 경외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파도 속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물질을 하는 용기. 하루 최대 7시간을 바닷속을 헤엄치며 물질을 하는 끈기. 물속에서 1분씩 숨을 참으며 10미터 아래까지 내려가는 참을성. 자칫 욕심을 부리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어 욕심을 버려야 하는 결단력. 이런 모습에 그는 해녀들을 인생의 롤 모델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해녀들이 일하는 모습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해녀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한국말이 서툴고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이 조금 있었지만 말보다는 마음으로 다가간 덕분에 해녀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해녀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 귀덕에 있는 한수풀해녀학교도 다녔다. 해녀들을 취재하며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한 사회를 구성하는 활동가로서의 모습에도 중점을 두었다. 자식들을 위해 추운 날씨에 바닷속에 몸을 던지는 그들의 희생정신,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 시절 해녀가 조직을 구성해서 벌인 저항운동정신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발간하고 그가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단연코 해녀들이 자신이 쓴 책을보고 난 후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을 때였다. 한 번도 자신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본 적 없는 해녀들은 제주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던 한 교포가 찍은 사진을 통해 자신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신기해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이방인, 낯설지만 다정한 제주에 빠지다

그는 여전히 제주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애월에 집을 짓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는 제주 지역사회와 하나가 된 것. 그는 제주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로 자연, 사람, 그리고 지역성을 꼽는다.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과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섬, 제주. 계절 따라 제각각 봉우리를 피우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수많은 축제들은 그에게 제주의 매력으로 다가왔다. “제주도는 제가 이제껏 살아왔던 로스앤젤레스와 베트남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사계절에 따라 바뀌는 자연에 매료되었죠. 한라산, 올레길, 오름, 바다 등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미국과는 다른 제주라는 지역성도 그에겐 큰 매력이다. 아직도 총을 소지할 수 있고 여러 나라를 정복해왔던 미국과는 달리 제주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평화의 땅으로 다가왔다. “제주는 세계화를 하기에도 아주 적합한 섬인 것 같아요. 예전과는 달리 현재의 제주는 여러 국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고 있어요. 영어교육도시처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들이 생기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뻗어 나가는 제주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또 어떠한가. 제주에 어떤 연고도 없고, 여태껏 한 번도 한국에서 살아보지 않았던 백선우 씨와 남편이 제주에서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주변사람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한국말이 서툴러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이웃사람들은 그와 그의 남편을 따뜻한 마음으로 환영했다. 그는 미국에서의 ‘나’ 중심 사회와는 다르게 ‘우리’에 중점을 두고 공동체 안에서 사는 제주인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마트나 우체국을 갔을 때 직원들은 항상 그를 알아보고 웃음으로 맞이해주었다. 투박한 말투로 무심한 듯하지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농부 아저씨들과 항상 뭔가 나눠줄 게 있다며 그를 부르는 동네아주머니들로 가득했다.
“할머니 한 분은 집에 배추가 너무 많다며 지나가던 저를 끌고 배추를 한 움큼이나 나눠주셨어요. 또 젊은 친구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길을 물어봐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기도 해서 제주도의 정에 감동받았어요.” 그는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많은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는 제주도의 매력이라고 여긴다.

제주의 삶 그대로를 담은 돌집을 짓다

제주도에 처음 정착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백선우 씨와 그녀의 남편은 점점 제주의 편안함과 매력에 빠지면서 정착할 곳을 물색했다. 그리고 2015년 애월읍에 위치한 아름다운 한 곳을 발견했다. 허름하지만 있는 그대로를 보존한 곳이어서 더 마음을 끌었고, 특히 제주의 역사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외양간을 본 순간 그는 ‘이곳이 바로 내가 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낯선 환경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찾아 나설 때 그는 소통하기 쉬운 외국인들이 많은 장소보다는 제주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곳을 더 원했다. 제주의 삶 그대로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는 원래부터 있던 집을 개조하려 했지만 집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외양간을 제외하고는 집을 다시 짓기로 마음먹었다. 최신식 현대적인 집보다는 제주만의 느낌을 더 살리고 싶었다. 현대와 제주의 전통을 함께 살려 보고싶었다. 나무로 집을 짓고 온돌을 갖추고 한지로 벽을 마감했다. 기와로 지붕을 놓고 집 주변은 제주 특유의 현무암으로 둘러 쌓았다. 이렇듯 제주도의 전통과 서양식 현대성을 조화시킨 그녀의 집은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둘 다 포용해서 조화시키는 바로 그 자신과도 같았다. “집을 지으면서 제 한국말 실력 탓에 공사를 담당한 사장님과 일하시는 분들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감을 갖기보다는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집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만약 제가 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면 집을 짓는 게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이미 18개월이나 걸렸는데 말이죠.”

자신의 결정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

백선우 씨는 자신 안에 집시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 어쩌면 한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땅에서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만 했던 조상들의 피를 물려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두려움은 항상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실수를 딛고 일어나 성공을 위해 또 한 발짝 나서는 것이 그가 가진 힘이다.
“호기심과 생각의 유연성. 저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이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살며 새로운 무언가를 맞닥뜨렸을 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불평하지 않는 생각의 유연성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현재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하며 행복한 제주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요즈음은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혼합재료를 이용한 미술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 사람들에게 영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며 더불어 사는 행복을 느끼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