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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꿈

VOL.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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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뼘 더 깊은 제주 이야기>전지적 제주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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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아픈 기억을
세상에 펼쳐내다

인디게임 개발팀 COSDOTS 김회민·정재령 디렉터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인 제주 4.3사건.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 동안 굴곡진 역사의 갈피에서 이념과 갈등이라는
무게에 눌린 채 덮여 있었다. 7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사건의 진실과 제주 사람들의 상처가 많은 이들의 노력에 의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COSDOTS 김회민·정재령 디렉터는 그 덮여 있던 4.3 사건의 기억을 게임이라는 형식을 빌려 세상에 펼쳐냈다.
글. 권내리 / 사진. 전재천

후대가 반드시 치유해야 할 상처 4.3사건

여기 할아버지와 손자가 있다. 할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을 펼친 손자는 할아버지의 어린시절 기억을 따라간다.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고 그저 덮어놓을 수밖에 없었던 1949년 봄 제주의 이야기. 모바일 게임 〈언폴디드 : 오래된 상처(Unfolded : Old wounds)〉의 시작이다.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은 ‘생존자의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해요. 내주변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나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는 거죠. 제주 4.3사건의 생존자들도 이런 과정을 겪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4.3사건 피해자들이 가진 부채의식, 죄책감이 치유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습니다. 4.3사건을 겪은 분들은 이미 고령이시고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 후손인 우리세대가 반드시 치유해야 할 상처라고 생각해요.” 김회민·정재령 디렉터가 4.3사건을 게임으로 만들어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70주년 추념식 행사 이후 소설 ‘순이삼촌’을 읽으면서부터다.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는 충격에 이어 ‘이걸 왜 몰랐을까’하는 반성이 이들을 게임 제작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첫 게임 〈언폴디드 : 오래된 상처〉와 후속작인 〈언폴디드 : 참극(Unfolded : Massacre)〉를 연이어 내놓았다. 한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참극 4·3사건을 다룬 게임으로 알려지며 많은 주목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언폴디드 : 참극〉은 의미 있는 주제 뿐만 아니라 작품성으로도 인정받아 ‘G-Rank 챌린지 서울상’을 수상한 데 이어 ‘부산인디커넥트’(BIC)에서 ‘최고의 소셜 임팩트’ ‘최고의 서사’로 선정되며 2관왕에 올랐다.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역사 게임, 〈언폴디드〉 시리즈

〈언폴디드〉 시리즈가 주목 받은 것은 4.3사건을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시나리오를 따라 문제를 해결하며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어드벤처 장르에다 장소나 인물, 사물을 클릭하는 ‘포인트 앤 클릭’ 형식으로 탄탄하게 구성해 내며 고전게임 스타일의 정석을 잘 지키고 있다. 주변 사물을 찾고 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하거나 스토리의 전개에 따라 주인공이 생사의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느끼는 갈등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게임 몰입은 물론 4.3사건 당시 주민들이 느꼈을 두려움과 갈등을 같이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간결한 흑백 드로잉으로 표현한 제주의 풍경은 어둡고 비극적인 분위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을 다룬다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이 게임으로 인해 4.3사건에 조금이라도 누를 끼치면 안되니까요. 게임적인 재미를 주면서도 역사적 사실과 그 의미를 잘 이끌어내야 했죠. 게임을 통해 당시 제주 사람들의 입장에서 느낀 두려움과 분노, 갈등을 같이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당시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요.”
게임을 공개한 뒤 우려의 댓글도 만만찮았다. 4.3사건이라는 무거운 역사를 게임이라는 장르에 담는 것부터 아예 4.3사건을 다루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김회민·정재령 디렉터의 생각은 확고하다. 4.3사건은 제대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야 하고 또 게임이라는 장르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진지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좋은 미디어라고. 그리고 지금이 바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다 본격적인 4.3을 다룰 세 번째 시리즈

최근 김회민·정재령 디렉터는 〈언폴디드〉 시리즈 세 번째 개발에 착수했다. 1편 ‘오래된 상처’가 전체 이야기를 여는 서론 격의 작품이었다면 2편 ‘참극’은 게임에 보다 익숙해지도록 돕는 역할로 기획됐다. 세 번째 시리즈야말로 본격적인 4.3사건을 다룰 본편인 셈이다. “1편과 2편을 조금 더 업그레이드해서 포함시킬 예정이에요. 두 편의 이야기를 더해 모두 4챕터로 구성하고 PC 기반으로 제작해 스팀 플랫폼을 통한 글로벌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어요.”
특히 힘을 쏟고 있는 부분은 제주 특유의 문화를 구현하는 것이다. 제주의 곶자왈과 오름 등 독특한 풍광과 무속신앙을 보여주는 당집, 해녀 등의 요소가 해외유저들에게 매력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세 번째 시리즈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빗개’를 생각하고 있다. ‘빗개’는 당시 주민들이 토벌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망보기로 세웠던 어린 소년들을 이르는 말이다. 토벌대가 오는 것을 발견하면 대나무 깃발을 흔들어 위험을 알렸다고 한다. 이 또한 4.3을 보다 깊이 알게 되면 얻게 된 좋은 아이디어다. “해외에는 역사게임을 좋아하는 유저층이 두텁지만 그래도 4.3사건을 알고 우리 게임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게임, 흥미로운 게임이라면 당연히 하겠죠. 게임이 재미있어 보여 시작했는데 4.3사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알게 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거예요.”

진정한 치유와 화해를 위해 펼쳐내는 이야기

세 번째 시리즈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제주4·3범국민위원회의 도움으로 역사적 사료와 자문을 제공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주의 풍경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제한되어 있어서 충분히 구현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위원회의 도움으로 하나하나 해결해가고 있다. 그 가운데 4.3사건의 생존자를 직접 만나고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면서 마음 깊이 그 아픔을 공감하게 되었던 것은 가장 큰 선물이자 이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자료나 기록으로 볼 때 막연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실제 그 당시를 겪은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했구나’ 싶어 부끄러웠어요. ‘한 부인이 임신한 상태로 폭행당하다 아이를 낳았다’하는 기록을 읽었었는데 그때 태어난 아이가 살아남아 지금 제 앞에서 그 일을 직접 설명해주시는 거예요. 그분들의 아픔이 어떨지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정말 잘 만들어야겠다’고 더 다짐하게 돼요.”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던 슬픈 이야기 4.3사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한은 말로 다 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다. 하지만 봉인을 풀고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세상에 펼쳐내어 다음 세대가 그 아픔을 이해하고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을 때야말로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이뤄지지 않을까. 〈언폴디드〉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